일본 의대,치대,약대의 현실

우리나라에는 의치한약수라는 학교 간의 서열을 뛰어넘는 월교(越校)의 최상위 학과가 있다. 물론 의대 안에서도, 치대 안에서도 서열은 있으나 어느 학교건 위의 5개의 학과는 높게 처 주는게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학 시스템을 가진 일본도 과연 비슷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대를 제외하면 아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한일 양국의 메디컬 관련 학과를 비교해볼 것인데 한국 대학의 입결과 이미지는 필자보다 이걸 읽고 있는 독자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조금씩 오류가 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또한 일본 쪽은 현재 일본에서 의학부에 재학중인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전문성이라곤 1도 없는 일개 대학생이 끄적인 글이니 이걸 보고 궁금한게 생기면 직접 구글에 검색해보길 바란다.
0. 일본 입시의 상식
-편차치

일본 대학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1등급 2등급 같은 평가 기준은 없고 편차치(偏差値)가 얼마냐로 학교의 급을 나눈다. 편차치를 구하는 공식이 있긴 한데 대충 말하자면 정규 분포를 따르는 시험 성적을 평균 50점으로 맞추어 표준화를 시킨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1등급 하면 4% 2등급 하면 11%가 떠오르듯 일본인들에겐 위와 같은 개념으로 다가올 것이다.
-국립대와 사립대의 입시 차이
일본은 특이하게 국립대와 사립대의 입시를 구분해서 실시하고 있다. 물론 한쪽만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복수 지원할 수 있으나 국립의 경우는 7과목을 보고 편차치를 산출하지만 사립의 경우는 자신에게 유리한 2~3개로 상당히 적은 과목으로만 편차치를 산출하기에 사립의 경우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편차치 70이라도 국립대 70과 사립대 70은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게 된다. 참고로 동일한 이유로 문, 이과의 편차치도 다르다.
아무튼 시험마다, 연도마다, 모집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국립 편차치+5 하면 사립과 비슷하다고 하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1. 의대
요즘 한국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하고 이에 따라 의대의 입결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겠지만 그 결과 2022년 기준 지방 의대 입결이 서울대 웬만한 공대보다 위에 있다고 한다.
과연 일본도 그럴까?

2023년 국공립 대학 편차치에서 가져온 자료이다. 도쿄대 이과 3류가 의학부이며 당연히 일본 내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과 2류, 1류가 도쿄대의 이공학부이며 교토대와 오사카 대학을 제외한 다른 구제국 대학 의대보다도 위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후로는 한국과 비슷하게 대부분 의학부가 자리 잡고 있으나 심심치 않게 구제국 공학부도 눈에 띈다.

그리고 편차치 69의 류큐대학(오키나와) 의학부를 끝으로 모든 의학부가 편차치 69 안에 밀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22년 자료를 기준으로 고신대 의대보다 입결이 높은 공대는 서울대 최상위 공대뿐이지만 일본의 경우 지방 국립대 의학부는 도쿄대보다는 훨씬 밑돌고 오사카, 동경공업 정도의 상위 국립대 공학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립 의대의 경우는 어떨까?

사립 의대 최상위는 당연히 게이오대학 의학부이며 사립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학부 없이 쭉 의학부만 나온다. 중간에 게이오 환경정보학부는 문과랑 동시 출원이라 편차치가 뻥튀기된 거라 무시해도 됨.


그러면 사립 의대 끄트머리는 어떤 느낌일까? 사립대 투탑인 와세다 게이오 공학부는 사립 편차치 기준 73에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데 같은 편차치 내에 많은 의대가 있으며 편차치 상으로 소케이 공학부보다도 낮은 의대가 존재한다. 또한 더 놀라운 것은 약학부, 수의학부는 와세다 게이오 공학부보다도 입결이 낮다는 것이다. 조금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일본에서 의대를 제외하면 한국처럼 의치한약수처럼 월교(越校)의 개념이 매우 옅어진다.
따라서 의대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면 의학부라면 학교 간판을 뛰어넘는 엄청난 학부가 맞다. 그러나 그 밑 부분을 들여다보면 한국처럼 하위 의대가 서울대를 역전하는 일은 없다. 이건 국립 사립을 가리지 않으며, 의대의 입결이 최강인건 양국이 동일하지만 일본 의학부의 경우는 그 편차가 크고 길다. 한국으로 치자면 지방 의대가 적어도 연세대 고려대 공학부와 비슷한 라인까지 넓게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편차치가 입시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면접, 과목, 준비하는 모집단 등 여러 가지가 갈리지만 위의 자료를 토대로 한국만큼 의대 쏠림이 심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2. 치대
우선 입결을 보기 전에 한일 양국의 치과 의원 개수를 비교해 보자.

최근 10년간 일본 치과병원의 수이다. 2021년 기준 약 68000개의 병원이 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 약 18000개로 일본의 인구를 생각해도 68000이란 숫자는 말도 안 되게 많다. 즉 일본에서 치과 의사는 한국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심지어 호칭도 다르다. 의사는 お医者様 의느님. 치과 의사는 歯医者さん치과아저씨. 또한 일본 내 치과 의원의 수는 일본 전국의 편의점보다 많다. 그럼 입결도 대충 예상이 갈 것이다.

국립대 기준 최하위 치대는 편차치가 60까지 떨어진다(최상위 치대는 학교 네임밸류 따라감). 이미 구제국은 아득히 멀어졌고 츠쿠바 요코국 고베대 밑인 오사카, 도쿄 도립대학교 (한국으로 치자면 시립대)까지 치대의 입결이 내려온다.
사립은 더 기가 막힌데

최상위 치대가 와세다 게이오 공대의 편차치인 73에 한참 못 미치며

밑으로 가면 심지어 편차치 45 즉 우리나라로 치자면 평균 5~6등급도 사립대 치대를 갈 수 있는 게 일본 사립 치대다. 물론 저 대학들도 치대 약대 간판을 뗀 다른 학과에 비하면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게 우리나라의 치대와 같은 느낌이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3. 약대
한국은 치대가 약대보다 위에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약대가 치대보다 위에 있다. 이건 흔히 말하는 명문대(구제국, 게이오)에 약학부는 많이 존재하나 치학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상위 약대들은 치대보다도 입결이 높고 명문대의 네임밸류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방 사립 약대는...

위의 사진은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사립대 최하위 약대이다. 편차치 42면 상위 80퍼 정도 즉 이론상 7등급도 갈 수 있는 게 사립대 약대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약대를 설립하다 보니

일본의 의,치,약대에 자주 등장하는 스트레이트 합격률이(유급이나 휴학 없이 6년 만에 국가시험을 합격하는 비율) 사립 약대의 3분의 1이 50퍼센트도 안된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의대를 제외한 의치한약수에서(애초에 일본은 한의대가 없다) 치대 약대 수의대는 한국과 같이 학과만을 보고 대단하다 이런 느낌은 매우 옅거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교 네임밸류가 있으면 그거 따라서 입결이 높고 아닌 경우는 한없이 내려간다.
4. 그렇다면 바보도 아니고 왜 공대를 갈까?
일본에서도 의사는 항상 연수(年収) 최상위권에 위치한 인기 직종이며 치과의사와 약사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상위권에 위치한 안정적인 직장이다. 그렇다면 입시도 쉬운 하위 의대, 치대, 약대를 포기하고 왜 굳이, 구태여 공대를 선택해서 입결이 더 높고 경쟁이 치열한 걸까?

위의 사진은 사립대 의학부의 평균 학비다. 6년 총액의 평균이 3200만엔 즉 3억 2천 정도이다. 이 정도면 말 안 해도 왜 공학부에 지원하는 사람이 더 많고 그쪽으로 경쟁과 사람이 몰리는지 알 것이다.

참고로 국립대는 학교 불문 6년 학비가 3500으로 고정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사립대 의학부 내에서도 편차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학비가 비싸지는 경향이 있다 (참고: 존스홉킨스 의대의 1년 학비가 약 8000만 원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의대보다야 덜 하지만 사립 치대나 약대도 비슷하다. 사립대 치대의 평균 학비는 3억 정도, 사립대 약대는 1억 2천 정도 한다고 하네.
아무튼 이러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집안은 사립 의대, 치대를 꿈꿀 수도 없으며 국립 의대를 노리기엔 매우 매우 험난하기에 적당히 사립대 공학부, 구제국등 국립대 공학부로 사람이 몰리고 자연스레 경쟁률과 편차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내용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립대의 경우 한국에 비하면 편차가 매우 크지만 의치약학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의 경우는 최상위 의대를 제외하면 그냥 개판이다.
비단 입결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국가시험 합격율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의 20년 뒤라고 자주 일컬어진다. 과연 저출산이란 터널을 풀악셀로 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20년 뒤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일본처럼은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인구 문제를 이미 겪은 옆 나라의 상황을 알아둬서 나쁠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에서 치과 갈 땐 조심하시길.